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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서 행성: 죽은 별의 잿더미에서 태어난 좀비 행성의 미스터리

사계연구원 2025. 8. 17.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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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서 행성: 죽은 별의 잿더미에서 태어난 좀비 행성의 미스터리

1992년, 전 세계 천문학계는 역사상 최초의 외계행성 발견이라는 획기적인 소식에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이 첫 번째 외계행성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지옥과도 같은 곳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태양처럼 안정적으로 빛나는 별이 아니라, 거대한 별이 초신성 폭발이라는 장엄한 죽음을 맞이한 후 남겨진, 극도로 압축된 시체, 즉 빠르게 회전하며 치명적인 방사선 빔을 뿜어내는 '펄서(Pulsar)'였습니다. '펄서 행성(Pulsar Planet)'이라고 불리게 된 이 기묘한 세계들은 천문학자들에게 커다란 수수께끼를 던졌습니다. 이 연약한 행성들은 어떻게 어머니 별의 격렬한 죽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혹시 그 죽음의 잿더미 속에서 유령처럼 새로 태어난 '2세대' 행성, 즉 '좀비 행성'일까요? 이것은 우주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 속에서 존재하는, 외계행성 탐사 역사의 가장 기묘하고 미스터리한 첫 페이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펄서 PSR B1257+12를 공전하는 행성 중 하나의 표면의 시점

 

 

우주 등대의 규칙적인 맥박, 그리고 예상치 못한 미세한 떨림

펄서 행성의 발견 이야기는 폴란드 출신의 전파 천문학자 알렉산데르 볼시찬(Aleksander Wolszczan)의 끈질긴 관측에서 시작됩니다.

  • 펄서: 우주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 펄서는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로, 그 자극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전파 빔이 등대처럼 우주를 휩쓸며 지구에 도달할 때, 극도로 규칙적인 '펄스' 신호를 만들어냅니다. 일부 밀리초 펄서는 원자시계에 버금갈 정도로 그 주기가 안정적이어서, '우주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로 불립니다.
  • PSR B1257+12의 발견: 1990년, 볼시찬은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을 이용하여 처녀자리 방향에 있는 밀리초 펄서 'PSR B1257+12'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펄서의 신호 도착 시간을 매우 정밀하게 측정하던 중,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펄서의 신호가 예측보다 미세하게, 하지만 주기적으로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했던 것입니다.

 

행성의 중력적 속삭임

이 미세한 '떨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51 페가시 b를 발견하게 한 '시선 속도법'과 원리적으로 유사했습니다.

  • 펄서 타이밍 법(Pulsar Timing Method): 만약 펄서 주위를 행성들이 공전하고 있다면, 그 행성들의 미약한 중력이 펄서 자체를 미세하게 앞뒤로 '흔들리게' 만듭니다. 펄서가 우리 쪽으로 약간 더 가까워질 때, 전파 신호는 예상보다 약간 더 일찍 도착합니다. 반대로 펄서가 우리에게서 약간 더 멀어질 때, 신호는 약간 더 늦게 도착합니다.
  • 결정적 증거: 볼시찬이 발견한 이 주기적인 시간 편차는, 보이지 않는 행성들이 펄서를 잡아당기며 일으키는 미세한 움직임의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동료 데일 프레일과 함께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펄서 PSR B1257+12 주위를 두 개의 행성이 각각 66.5일과 98.2일 주기로 공전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1992년 1월, 이들의 발견은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존재를 확인한 외계행성이었습니다. (1995년에 발견된 51 페가시 b는 '태양과 같은 주계열성' 주위에서 발견된 최초의 외계행성입니다.) 이후 추가 관측을 통해, 더 안쪽에 25.3일 주기로 도는 세 번째 행성까지 발견되었습니다. 이 행성들은 각각 신화 속 유령의 이름을 따 '드라우그(Draugr)',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포베토르(Phobetor)'라는 으스스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불가능한 존재: 펄서 행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발견은 환호와 동시에 거대한 의문을 낳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펄서 주위에 행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 초신성 폭발의 파괴력: 펄서는 거대한 별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후에 남겨진 잔해입니다. 초신성 폭발은 항성계를 완전히 파괴할 정도의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만약 원래의 별 주위에 행성들이 있었다면, 이 격렬한 폭발 과정에서 대부분 증발하거나 궤도 밖으로 튕겨져 나갔어야 합니다.
  • 펄서의 치명적인 환경: 설령 행성들이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펄서가 내뿜는 강력한 X선과 고에너지 입자 빔은 어떤 행성의 대기라도 순식간에 벗겨내고 표면을 불모지로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펄서 행성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행성처럼 보였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불가능을 설명하기 위해 크게 세 가지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가설 1. 살아남은 생존자 (The Survivor)

첫 번째 가능성은, 이 행성들이 원래 별의 행성이었지만, 초신성 폭발이라는 대재앙에서 살아남았다는 시나리오입니다.

  • 조건: 이것이 가능하려면, 이 행성들은 원래 별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진 궤도를 돌고 있었어야 합니다. 또한, 초신성 폭발이 비대칭적으로 일어나, 폭발 후 남겨진 펄서가 큰 '반동'을 받지 않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 문제점: PSR B1257+12의 행성들은 펄서에 비교적 가까이 붙어 있으며, 거의 원에 가까운 매우 질서정연한 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초신성 폭발과 같은 혼돈스러운 사건을 겪고 난 후의 행성계가 이토록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가설은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가설 2. 파괴된 동반성의 잔해 (The Remnant)

두 번째 시나리오는, 펄서가 원래 쌍성계의 일원이었고, 그 동반성이 파괴되면서 남겨진 잔해가 행성을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 백색왜성 동반성: 예를 들어, 중성자별이 동반성인 백색왜성의 물질을 빨아들여 '밀리초 펄서'로 가속되는 과정에서, 백색왜성은 점차 질량을 잃고 완전히 증발하거나 파괴될 수 있습니다. 이때 남겨진 물질들이 펄서 주위에 원반을 형성하고, 이 원반에서 새로운 행성들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 문제점: 이 시나리오로 만들어지는 행성은 주로 탄소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무거운 원소로 이루어진 '탄소 행성'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PSR B1257+12 행성들의 질량은 지구와 유사한 암석 행성에 더 가깝습니다.

 

가설 3. 2세대 행성, 좀비의 탄생 (The Second Generation)

현재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이 행성들이 초신성 폭발 이후에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2세대 행성'이라는 것입니다.

  • 초신성 잔해 원반 (Fallback Disk): 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때, 별의 모든 물질이 밖으로 날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물질은 새로 형성된 중성자별의 중력에 붙잡혀 그 주위로 다시 떨어지면서, 거대한 '잔해 원반(fallback disk)'을 형성합니다.
  • 새로운 행성 형성: 이 잔해 원반은 마치 젊은 별 주위의 '원시 행성계 원반'과 매우 유사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 원반 속의 물질들이 수백만 년에 걸쳐 다시 뭉쳐, 완전히 새로운 행성들을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 '좀비 행성': 죽은 별의 잿더미 속에서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이들을 '좀비 행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시나리오는 PSR B1257+12 행성들의 질서정연한 원궤도와 그 구성 성분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결론: 우주의 강인한 창조력

펄서 행성의 발견은 외계행성 탐사의 역사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행성 형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확장시켰습니다. 행성은 더 이상 태양과 같이 조용하고 안정적인 별 주위에서만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사건인 초신성 폭발의 잿더미 속에서도, 우주의 창조력은 새로운 세계를 빚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좀비 행성'들은 생명이 살기에는 극도로 척박한 지옥과도 같은 환경일 것입니다. 펄서가 내뿜는 치명적인 방사선은 어떤 형태의 생명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 자체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파괴 속에서도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초의 외계행성이 죽은 별의 유령이었다는 이 기묘한 이야기는, 우리가 우주의 다양성과 극한 환경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과 차세대 관측 장비들은 더 많은 펄서 행성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태어난 '잔해 원반'의 모습을 직접 관측하여, 이 좀비 행성들의 탄생 미스터리를 완전히 풀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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