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행성의 푸른 과거: 화성의 잃어버린 바다와 생명의 흔적을 찾아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화성(Mars)은 차갑고, 건조하며, 붉은 먼지로 뒤덮인 황량한 행성입니다. 옅은 이산화탄소 대기는 생명체가 살기에 너무 척박하고, 표면의 온도는 영하 수십 도를 오르내립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화성을 탐사해 온 궤도선과 로버들이 보내온 놀라운 증거들은, 이 붉은 행성이 수십억 년 전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훨씬 더 따뜻하고 물기가 넘치는 푸른 행성이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한때 강물이 굽이쳐 흐르고, 깊은 호수가 존재했으며, 심지어 북반구의 광대한 지역을 뒤덮는 거대한 바다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화성의 잃어버린 과거. NASA의 로버 큐리오시티(Curiosity)와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는 바로 이 '푸른 과거'의 흔적을 찾아 고대의 강바닥과 삼각주를 탐사하며,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 즉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은 붉은 먼지 아래 잠들어 있는 화성의 물기 어린 과거를 복원하고, 고대 미생물의 흔적을 추적하는 위대한 탐정 이야기입니다.
초기 관측과 '화성 운하' 소동
화성에 대한 인류의 상상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는 망원경으로 화성 표면에서 '카날리(canali)'라고 불리는 직선적인 지형들을 관측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수로'나 '해협'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영어로 '운하(canal)'로 오역되었고, 이는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로웰은 이 직선 지형이 가뭄에 시달리는 화성인들이 극지방의 얼음을 녹여 물을 끌어오기 위해 건설한 거대한 인공 운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당시 대중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수많은 SF 소설의 소재가 되었지만, 이후 더 강력한 망원경 관측을 통해 이 '운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뇌가 무작위적인 점들을 선으로 연결하려는 착시 현상임이 밝혀졌습니다.
탐사선이 발견한 명백한 증거: 화성 표면에 흐르던 물
'화성 운하'는 상상의 산물이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화성 탐사는 진짜 '물이 흘렀던 흔적'들을 속속 발견하며 과학계를 흥분시켰습니다.
- 궤도선의 발견 (매리너 9호, 바이킹, MRO): 1971년 매리너 9호는 화성 궤도에서 거대한 화산들과 함께, 마치 지구의 마른 강바닥처럼 보이는 구불구불한 계곡 지형들을 최초로 촬영했습니다. 이후 바이킹 1, 2호와 화성 정찰위성(MRO) 등 수많은 궤도선들은 더 높은 해상도로 강물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계곡망, 홍수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유출 수로, 그리고 호수 바닥에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삼각주(delta)' 지형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과거 화성 표면에 상당한 양의 액체 상태 물이 안정적으로 흘렀다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 로버의 현장 증거 (스피릿, 오퍼튜니티): 2004년 화성에 착륙한 쌍둥이 로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현장 지질학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오퍼튜니티는 착륙지점인 메리디아니 평원에서 '블루베리'라는 별명이 붙은, 물이 있는 환경에서만 형성되는 적철석(hematite) 구슬들을 다량으로 발견했습니다. 또한, 물속에서 퇴적된 암석에서만 나타나는 교차 층리(cross-bedding)와 황산염 광물들을 발견하며, 과거 그 지역이 얕고 짠 물이 오랫동안 고여 있었던 곳임을 증명했습니다.
큐리오시티와 퍼서비어런스: 고대 호수와 삼각주를 탐사하다
이전 탐사들이 '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했다면, 2012년 착륙한 큐리오시티와 2021년 착륙한 퍼서비어런스 로버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생명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는가?' 그리고 '생명의 흔적이 남아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장소로 보내졌습니다.
큐리오시티가 발견한 '게일 크레이터'의 고대 호수
큐리오시티의 착륙지인 '게일 크레이터'는 중앙에 거대한 샤프 산이 솟아있는 독특한 지형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크레이터가 수십억 년 전 거대한 호수였으며, 샤프 산은 그 호수 바닥에 수억 년에 걸쳐 쌓인 퇴적물 층이라고 추정했습니다.
- 생명의 재료 발견: 큐리오시티는 호수 바닥의 진흙 퇴적암을 시추하여 분석한 결과, 탄소, 수소, 산소, 질소, 황 등 생명에 필수적인 화학 원소들을 모두 발견했습니다.
- 마실 수 있었던 물: 또한, 물의 pH(산성도)가 거의 중성에 가까웠고, 염분 농도도 높지 않아, 만약 미생물이 있었다면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담수 환경이었음을 밝혀냈습니다. 큐리오시티는 과거 화성에 오랫동안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habitable) 환경이 존재했음을 명백히 증명했습니다.
퍼서비어런스의 임무: 생명의 흔적을 찾아라
큐리오시티가 생명의 '환경'을 증명했다면, 퍼서비어런스의 임무는 더 직접적으로 고대 생명체의 '흔적(biosignature)'을 찾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NASA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장소로 '예제로 크레이터(Jezero Crater)'를 선택했습니다.
- 예제로 크레이터: 고대 삼각주의 보고: 예제로 크레이터는 35억 년 전 거대한 강물이 흘러들어와 호수를 형성했던 곳으로, 강물이 운반해 온 퇴적물이 부채꼴 모양으로 쌓인 완벽한 형태의 '삼각주'가 남아있습니다. 지구에서도 나일강 삼각주와 같은 곳은 유기물과 생명의 흔적이 가장 잘 보존되는 장소입니다.
- 유기 분자의 발견: 퍼서비어런스는 이 삼각주 지역의 암석에서 다양한 종류의 유기 분자를 발견했습니다. 유기 분자는 생명 활동 없이도 생성될 수 있지만,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유기 분자들이 생명체의 흔적이 잘 보존될 수 있는 미세한 황산염 광물과 함께 발견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 화성 시료 귀환 미션 (Mars Sample Return): 퍼서비어런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장차 지구로 가져올 암석과 토양 시료를 채취하여 티타늄 튜브에 밀봉하는 것입니다. 현재 NASA와 유럽우주국(ESA)은 이 시료들을 지구로 가져와 최첨단 장비로 분석하는 '화성 시료 귀환' 미션을 공동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시료 속에서 명백한 미생물 화석이나 생명의 흔적이 발견된다면,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바다와 대기: 화성은 왜 붉은 행성이 되었나?
그렇다면 한때 물이 넘쳐났던 화성은 어째서 지금과 같이 차갑고 건조한 행성이 되었을까요? 그 원인은 바로 화성이 자기장(magnetic field)을 잃어버렸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 자기장의 역할: 지구는 핵 내부의 액체 금속이 대류하면서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어냅니다. 이 자기장은 태양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들(태양풍)로부터 지구의 대기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합니다.
- 화성의 비극: 화성은 지구보다 크기가 작아 핵이 더 빨리 식었습니다. 약 40억 년 전, 화성의 핵 활동이 멈추면서 자기장 방패가 사라졌습니다. 보호막을 잃은 화성의 대기는 이후 수억 년에 걸쳐 태양풍에 의해 우주 공간으로 뜯겨져 나갔습니다.
- 결과: 대기가 희박해지면서 온실 효과가 약해지고 기압이 낮아지자, 표면의 액체 상태 물은 더 이상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우주로 증발하거나, 일부는 극지방의 얼음(polar ice caps)이나 지하에 얼어붙은 채로 남게 되었습니다.
결론: 붉은 먼지 아래 잠든 푸른 기억
화성 탐사의 역사는 붉은 행성의 가면을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진 푸른 과거를 드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화성이 한때 생명이 살기에 충분한 환경을 가졌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남은 질문은 '과연 그곳에 생명이 정말로 존재했는가?'입니다.
퍼서비어런스가 채취하고 있는 암석 시료들은 인류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단서입니다. 2030년대에 이 시료들이 마침내 지구에 도착하여 분석되었을 때, 그 안에서 아주 작은 미생물의 화석이라도 발견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주에서 외롭지 않다는 첫 번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설령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더라도, 화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줍니다. 생명이 존재하기에 완벽했던 하나의 세계가 어떻게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의 행성으로 변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의 메시지이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창백한 푸른 점' 지구가 얼마나 소중하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거울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