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륨화 수소 이온(HeH+): 우주 화학의 잃어버린 첫 페이지를 찾아서
헬륨화 수소 이온(HeH+): 우주 화학의 잃어버린 첫 페이지를 찾아서
우주의 역사는 거대한 창조의 서사시입니다. 빅뱅(Big Bang) 직후 극도로 뜨거웠던 원시 수프 상태에서 쿼크와 렙톤 같은 기본 입자들이 태어났고, 우주가 식으면서 양성자와 중성자가, 그리고 마침내 수소와 헬륨이라는 최초의 원자들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단순한 원자들이 서로 결합하여 우주 최초의 '분자(molecule)'를 형성하며, 복잡한 화학의 시대를 연 첫 번째 주인공은 누구였을까요? 수십 년간, 이론물리학자들은 그 영예의 주인공이 헬륨 원자와 수소 양성자(이온화된 수소)가 결합한, 우주에서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분자 이온인 '헬륨화 수소 이온(Helium Hydride Ion, HeH+)'일 것이라고 예측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최초의 분자'는 너무나 반응성이 강하고 희귀하여, 오랜 탐색에도 불구하고 우주 공간에서 그 존재가 결코 확인되지 않은 '유령 분자'였습니다. 마침내 2019년, NASA와 독일 항공우주센터(DLR)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성층권 비행 천문대 SOFIA가 지구로부터 약 3,000광년 떨어진 행성상 성운에서, 마침내 이 잃어버린 분자의 희미한 신호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우주 화학의 역사책에서 오랫동안 비어 있던 첫 페이지를 채운 극적인 발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론 속의 주인공: 왜 HeH+가 최초의 분자인가?
빅뱅 후 약 10만 년이 지났을 때, 우주의 온도는 수천 도로 충분히 식어 원자핵과 전자가 결합하는 '재결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우주를 구성하는 원소는 거의 전부가 가장 단순한 원소인 수소와 헬륨이었습니다.
- 가장 먼저 결합할 수 있었던 짝: 이 시기, 우주에서 가장 먼저 화학 결합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원자 조합이었을까요?
- 두 개의 수소 원자가 결합한 수소 분자(H₂)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분자이지만, 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입자나 먼지 표면과 같은 촉매가 필요하여 초기 우주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웠습니다.
- 반면, 헬륨은 가장 안정적인 비활성 기체로, 다른 원자와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헬륨은 빅뱅의 복사 에너지에 의해 쉽게 전자를 잃고 이온화될 수 있었습니다.
- 헬륨의 우월한 결합력: 화학에서 원자가 다른 원자와 결합하려는 경향은 '양성자 친화도(proton affinity)'로 측정됩니다. 헬륨은 그 어떤 중성 원자보다도 높은 양성자 친화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헬륨 원자는 우주에 풍부하게 존재하던 수소 양성자(H+)를 다른 어떤 원자보다도 더 강력하게 끌어당겨 공유 결합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 우주 최초의 화학 반응: 따라서, 우주에서 일어난 최초의 화학 반응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He + H+ → HeH+ + γ (광자). 이 반응을 통해, 우주 최초의 분자인 헬륨화 수소 이온이 탄생했습니다.
이론에 따르면, 이 HeH+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했지만, 우주 화학의 진화에서 결정적인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HeH+는 매우 반응성이 높아, 주변의 풍부한 중성 수소 원자들과 즉시 반응하여,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분자인 수소 분자(H₂)를 형성하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HeH+ + H → H₂ + He+
수소 분자(H₂)는 가스 구름이 효과적으로 식어서 수축하고, 마침내 최초의 별을 탄생시키는 데 필수적인 냉각제 역할을 합니다. 즉, HeH+가 없었다면, 이후의 모든 별과 은하, 그리고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우주적 연쇄 반응은 시작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수십 년간의 추적: 왜 그토록 찾기 어려웠는가?
이론적으로 그토록 중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HeH+는 수십 년간 천문학자들의 눈을 피해왔습니다.
- 희귀성과 짧은 수명: HeH+는 우주 최초의 분자였지만, 앞서 본 반응처럼 주변의 수소와 너무나 빨리 반응하여 사라지기 때문에, 현재 우주에서는 그 양이 극히 미미합니다.
- 특정 환경의 필요성: HeH+가 존재하려면, 헬륨을 이온화시킬 만큼 강력한 자외선을 내뿜는 뜨거운 천체(예: 갓 태어난 별, 백색왜성)가 근처에 있어야 하고, 동시에 수소 분자를 파괴할 만큼 에너지가 강해야 하는, 매우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는 환경이 필요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장소로 '행성상 성운(Planetary Nebula)'을 지목했습니다. 행성상 성운은 죽어가는 별이 남긴 뜨거운 백색왜성 핵이 주변의 가스를 강하게 이온화시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 지구 대기의 방해: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지구 대기였습니다. HeH+가 회전하면서 방출하는 고유한 전파 신호(스펙트럼선)의 파장은 149.1 마이크로미터(μm)로, 이는 원적외선(far-infrared) 영역에 속합니다. 이 파장의 빛은 지구 대기 중의 수증기에 의해 완벽하게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에, 지상에 있는 어떤 망원경으로도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천문대, SOFIA: 성층권에서의 돌파구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망원경을 대기 위로 올려보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 임무를 위해 탄생한 것이 NASA와 DLR이 공동으로 개발한 '성층권 적외선 천문대(Stratospheric Observatory for Infrared Astronomy)', 즉 SOFIA입니다.
- 보잉 747 위의 망원경: SOFIA는 거대한 보잉 747SP 항공기를 개조하여, 동체에 직경 2.7미터의 반사 망원경을 탑재한 '하늘을 나는 천문대'입니다.
- 대기 장벽 돌파: SOFIA는 약 13km 상공, 즉 지구 대기 중 수증기의 99% 이상이 존재하는 층 위인 성층권에서 비행하며 관측을 수행합니다. 이를 통해 지상에서는 불가능했던 원적외선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독보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GREAT 수신기: 여기에 더해, 독일 연구팀이 개발한 초고해상도 분광기인 'GREAT(German Receiver for Astronomy at Terahertz Frequencies)'가 장착되면서, SOFIA는 149.1 μm 파장에서 HeH+가 내뿜는 극도로 희미한 신호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2016년부터, SOFIA 팀은 지구로부터 약 3,000광년 떨어진 백조자리의 젊은 행성상 성운 'NGC 7027'을 집중적으로 관측하기 시작했습니다. NGC 7027은 중심에 있는 백색왜성이 극도로 뜨거워, HeH+가 존재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역사적인 발견: 잃어버린 분자의 신호를 포착하다
수년간의 관측과 데이터 분석 끝에, 2019년 4월, 막스 플랑크 전파 천문학 연구소의 롤프 귀스텐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마침내 NGC 7027의 스펙트럼에서, 이론적으로 예측된 정확한 파장 위치에 존재하는 헬륨화 수소 이온(HeH+)의 명백한 신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 이론의 위대한 증명: 이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탐색의 성공이자, 초기 우주의 화학적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론적 모델이 근본적으로 옳았음을 증명하는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우주 화학의 역사책에서 오랫동안 비어 있던 첫 번째 페이지가 마침내 채워진 것입니다.
- 우주적 조화의 확인: 이 발견은 빅뱅 이후 우주가 어떻게 단순한 원자에서 복잡한 분자로, 그리고 마침내 별과 행성, 생명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화학적 여정을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단계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우리의 존재로 이어지는 거대한 연쇄 반응의 첫 번째 고리가 마침내 제자리에 끼워진 셈입니다.
결론: 우주 화학의 초석을 놓다
헬륨화 수소 이온의 발견은 그 자체로도 위대한 과학적 성취이지만, 그 의미는 훨씬 더 깊습니다. 이는 우리가 우주의 가장 초기 순간에 대한 물리 및 화학적 모델을 얼마나 정교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 발견은 SOFIA와 같은 독창적인 관측 장비가 현대 천문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때로는 지상이나 우주 궤도에 고정된 망원경이 아니라, 필요한 곳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유연한 플랫폼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우주 최초의 분자인 HeH+는 비록 짧은 생을 살고 다른 분자의 재료로 사라졌지만, 그 존재는 우주가 화학적으로 풍부하고 복잡한 장소로 진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초석'과도 같았습니다. 3,000광년 떨어진 성운 속에서 발견된 이 희미한 신호는, 137억 년 전 우주의 새벽에 처음으로 울려 퍼졌던 화학적 탄생의 메아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