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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9 (Planet Nine)를 찾아서: 태양계의 숨겨진 아홉 번째 행성은 존재하는가?

사계연구원 2025. 8. 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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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9 (Planet Nine)를 찾아서: 태양계의 숨겨진 아홉 번째 행성은 존재하는가?

2006년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은 이후, 우리 태양계의 행성은 공식적으로 8개로 정리되었습니다. 하지만 태양계의 가장 어둡고 추운 변방, 해왕성 너머의 광활한 카이퍼 벨트(Kuiper Belt) 너머에는,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진짜 아홉 번째 행성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의 천문학자 마이크 브라운과 콘스탄틴 바티긴은 극도로 멀리 떨어진 몇몇 카이퍼 벨트 천체들의 기묘하게 정렬된 궤도를 설명하기 위해, 지구 질량의 5~10배에 달하는 거대한 미지의 행성, 즉 '행성 9(Planet Nine)'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대담한 가설을 제기했습니다. 이 발표는 전 세계 천문학계를 흥분시키며, 19세기 해왕성 발견 이후 가장 거대한 '이론에 기반한 행성 탐색전'의 막을 올렸습니다. 과연 태양계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는 거대한 행성이 숨어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보이지 않는 유령 행성의 중력적 흔적을 쫓는,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적 보물찾기 이야기입니다.

 

 

해왕성 궤도 너머, 외부 태양계의 평면도

 

 

탐색의 시작: 세드나와 기묘한 궤도들

행성 9 가설의 씨앗은 2003년, 마이크 브라운(공교롭게도 명왕성을 행성에서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명왕성 킬러'로 유명한 바로 그 인물)이 발견한 '세드나(Sedna)'라는 기묘한 천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극단적인 궤도: 세드나는 태양에 가장 가까울 때조차 76 AU(1 AU는 지구-태양 간 거리, 해왕성은 약 30 AU)나 떨어져 있고, 가장 멀 때는 거의 1000 AU까지 멀어지는, 극도로 길고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립니다. 공전 주기는 무려 11,400년에 달합니다.
  • 해왕성과의 단절: 중요한 점은 세드나의 궤도가 해왕성을 포함한 기존 8개 행성의 중력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세드나를 그토록 기묘하고 멀리 떨어진 궤도로 내던진 것일까요?

세드나의 발견 이후, '2012 VP113'(별명 '바이든')과 같은 유사한 극단적인 궤도를 가진 '분리 천체(detached objects)'들이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이크 브라운과 콘스탄틴 바티긴은 이 천체들의 궤도에서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결정적 증거: 6개의 정렬된 궤도

브라운과 바티긴은 극도로 멀리 떨어진 궤도를 가진 6개의 카이퍼 벨트 천체(세드나 포함)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 공간적 정렬: 이 6개의 천체들은 모두 태양계의 같은 사분면에 모여 있는 것처럼, 그 궤도의 장축이 한쪽 방향으로 기묘하게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2. 궤도면의 정렬: 또한, 이들의 궤도면 자체도 태양계의 평균적인 궤도면(황도면)에 대해 거의 동일한 각도(약 30도)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정렬이 우연히 발생할 확률은 불과 0.007%, 즉 15,000분의 1에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치 누군가 이 6개의 천체들을 의도적으로 한쪽으로 몰아넣고 기울여 놓은 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을 정렬시킨 보이지 않는 '목동'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바로 이들보다 훨씬 더 무거운 거대한 행성의 중력이 수십억 년에 걸쳐 이들의 궤도를 서서히 조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령 행성의 몽타주: 행성 9는 어떤 모습일까?

브라운과 바티긴은 이 6개 천체의 궤도를 설명할 수 있는 가상의 행성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수행하여, '행성 9'의 대략적인 몽타주를 그려냈습니다.

  • 질량: 지구 질량의 약 5~10배. 이는 암석 행성인 지구보다는 훨씬 크고, 가스 거인인 해왕성(지구 질량의 17배)보다는 작은, '슈퍼지구(Super-Earth)' 또는 '미니 해왕성(Mini-Neptune)'에 해당합니다. 이는 우리 태양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외부 은하에서는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유형의 행성입니다.
  • 궤도: 태양으로부터 평균적으로 약 400~800 AU 떨어진, 매우 길고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해왕성보다 20배 이상 먼 거리입니다.
  • 공전 주기:1만 년에서 2만 년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 기원: 이 행성은 원래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과 함께 태양계의 더 안쪽에서 형성되었으나, 초기 태양계의 중력적 혼돈 속에서 목성이나 토성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현재의 멀고 찌그러진 궤도로 튕겨져 나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1세기의 행성 탐색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행성 9는 이론적으로 매우 설득력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망원경으로 직접 그 존재를 확인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어둡고, 차갑고, 느리다: 행성 9는 태양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극도로 희미한 태양빛만을 반사합니다. 또한, 온도가 영하 220℃ 이하로 매우 차가워 자체적으로 내는 적외선 복사도 거의 없습니다. 케플러의 제3법칙에 따라 그 궤도 속도 또한 매우 느려서, 클라이드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했던 것처럼 사진을 비교하는 방법으로는 찾아내기가 극도로 어렵습니다.
  • 넓은 탐색 영역: 행성 9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그것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늘의 광대한 영역을 샅샅이 뒤져야 합니다. 이는 마치 어두운 밤에 거대한 축구장에서 잃어버린 작은 검은 구슬 하나를 손전등으로 찾는 것과 같습니다.

 

전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이 도전에 맞서고 있습니다.

  • 스바루 망원경: 하와이에 위치한 일본의 스바루 망원경과 같은 대구경 지상 망원경들이 행성 9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하늘 영역을 체계적으로 탐사하고 있습니다.
  • 베라 C. 루빈 천문대 (Vera C. Rubin Observatory): 칠레에 건설 중인 이 차세대 탐사 망원경은 '시놉틱 전천 탐사(Legacy Survey of Space and Time, LSST)'를 통해 10년간 남반구 하늘 전체를 주기적으로 촬영할 예정입니다. 만약 행성 9가 존재한다면, LSST의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그 움직임이 포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반론과 대안 가설: 행성 9는 정말 존재할까?

행성 9 가설은 매우 흥미롭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 반론과 대안 가설이 존재합니다.

  • 관측 편향 (Observational Bias): 일부 비판가들은 6개 천체의 기묘한 궤도 정렬이 실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하늘의 특정 영역을 더 집중적으로 관측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관측 편향'의 결과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우연히 그 방향에서만 천체들을 발견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늘 전체를 공평하게 탐사하는 LSST와 같은 프로젝트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 자기 인력 가설 (Self-Gravity): 다른 가설은 카이퍼 벨트의 수많은 작은 천체들이 개별적으로는 미미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상당한 집단적 중력을 행사하여 서로의 궤도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거대한 행성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작은 천체들의 '자기 인력'이 궤도 정렬을 만들었다는 주장입니다.
  • 원시 블랙홀 (Primordial Black Hole): 가장 이색적인 가설 중 하나는, 행성 9의 정체가 행성이 아니라 빅뱅 직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원시 블랙홀'이라는 주장입니다. 만약 지구 질량 5배 정도의 블랙홀이 그곳에 있다면, 행성과 동일한 중력적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결론: 태양계의 마지막 비밀을 향한 여정

행성 9는 현재 우리 태양계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흥미로운 미스터리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존재하여 아홉 번째 행성의 자리를 되찾을까요, 아니면 관측 편향이나 다른 물리 현상으로 설명될 신기루일까요? 그 답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행성 9를 찾는 과정 자체가 우리 태양계의 가장 먼 변방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혁명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탐색전은 천문학자들에게 더 넓고 깊은 하늘을 탐사하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행성 9뿐만 아니라 수많은 새로운 카이퍼 벨트 천체와 태양계의 기원에 대한 단서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846년, 천문학자들은 천왕성의 궤도 교란을 설명하기 위해 해왕성의 존재를 예측했고, 결국 예측된 위치에서 해왕성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다시 한번 보이지 않는 중력의 흔적을 쫓아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을 찾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보물찾기의 끝에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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